어제 IUC에서는 김환기 동국대 교수의 <재일 코리안의 삶과 문학>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제강점기에서부터 냉전시기에 이르기까지 재일 코리안 사회의 형성과 정착과정에 대한 이야기부터 자세히 일별해주셨습니다.

정리해 보자면 제1기(1910~1938)에는 농민층의 몰락과 도항이 이어졌습니다. 한일강제병합 이후 1920년경 재일코리안이 4만여명이었고 일제의 수탈로 경작지를 잃은 농민들의 일본행이 계속됐습니다(도쿄, 교토, 오사카 등 대도시). 재일코리안의 직장은 대체로 탄광/공장/건설 노동자 등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2기(1939~1945)는 만주사변(1931)을 시작으로 중일전쟁 발발(1937)과 아시아-태평양전쟁 개시(1941)로 이어지는 일본의 노골적인 침략정책으로 강제연행 시작되면서 1931년-약 96만여명에서 1945년 약 210만 명으로 재일코리안이 증가하였습니다. 제3기(1945~1970년대)는 패전이후 재일코리안에게 귀환과 체류의 선택지 주어진 시기였습니다. 한반도 분단과 군정, 제주 4·3사건 등 해방정국의 혼란함과 일본정부의 귀국지참금(1000엔) 및 수화물에 대한 제한으로 약 65만 명이 일본 잔류를 택했습니다. 제4기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입니다. 1970년대 재일코리안의 귀국지향성은 약화되고 정주화 경향 강화되었습니다. 1960년대부터 재일코리안 2세/3세의 비중이 급증한 것도 이때문입니다(50%초과). 1980년대 이후 글로벌시대 신이민으로 뉴커머의 증가한 것도 특징적입니다.

재일 코리안은 일본 사회에 수많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활동하고 투쟁하였습니다., 그들은 일본 전역에 120여개의 학교를 설립하고 민족교육에 크게 힘썼습니다. 이후 이들은 재일 코리안의 차별철폐 운동에서 적극적이었는데요. ‘한신교육투쟁’과 ‘취업차별 철폐투쟁’, ‘공무원임용차별 철폐투쟁’, ‘지문날인거부운동’ 등이 바로 그 사례들입니다.

이처럼 지난하고 걍퍅한 재일 코리안의 곁에는 여러 신문과 잡지가 있었습니다. 해방직후 재일조선인 조직의 형성과 함께 신문발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1945-60년대에 조련의 기관지 《민중신문》, 건청의 기관지 《조선신문》, 《민청시보》, 《조선인경제시보》, 《조선경제신문》, 《통일일보》 등이 창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신문들은 발행주체들 간의 입장 차이와 재정난으로 단명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까지 발행되는 신문은 《민단신문》, 《조선신보》, 《통일일보》가 있습니다.

잡지로는 해방직후 김달수 중심의 『민주조선(民主朝鮮)』, 1950년대 김시종 중심의 『진달래(ヂンダレ)』와 1960년대 『한양』이 있습니다. 1970-80년대 『계간 삼천리』와 『민도(民涛)』가 있고, 1990년대에 『계간 청구(季刊靑丘)』가 발행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문예잡지 『계림(鷄林)』, 『가리온(カリオン)』, 『일본 속의 조선문화』, 『계간 마당(季刊まだん)』, 『호르몬문화(ほるもん文化)』, 여성들의 문예잡지 『땅에서 배를 저어라(地に舟をこげ)』, 최근의 『항로(抗路)』 등이 발행됨. 재일코리안의 대표적인 담론 공간으로서 재일코리안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일본에 큰 반향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또 대표적인 한글잡지로는 월간 종합교양지 『한양』이 있었고, 문예동의 기관지 『문학예술』, 『겨레문학』, 그리고 시 전문잡지 『종소리』, 『한흙』 등이 있었습니다.

이후 선생님께서는 재일 코리안의 문학사도 정교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재일코리안 문학의 전사(前史)로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유학생들과 프롤레타리아 작가들의 일본어글쓰기(김용제, 백철, 장혁주, 김사량 등)를 들으셨습니다. 재일코리안 1세대 작가들은 해방이후 재일코리안 문학의 출발을 알렸는데요. 김달수, 김시종, 김석범, 정승박 등을 손꼽으셨습니다. 이들은 조국/민족/이념을 배경으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관점에서 한국과 일본, 재일코리안 사회에 내재된 민족의식, 정체성 등을 형상화하였습니다(특히 개개인의 역사적 체험과 조국/민족의 현실). 중간세대의 문학가들로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로 교육을 받은 세대들을 지목하셨는데요. 1960년 이후에 본격 등장한 이회성, 김학영, 양석일, 이양지, 고사명 등을 꼽았습니다. 이들은 일본 문학평론가(가와무라 미나토)로부터 “가장 재일조선인 문학다운 문학”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1971년도 하반기에 이회성은 1972년 재일코리안 최초로 『다듬이질 하는 여인』을 통해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이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양지는 재일코리안 한국유학 체험을 서사화한 『유희』를 통해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이들의 문학주제는 한국/한국인/한국사회와 일본/일본인/일본사회의 길항과 거리조율, 이방인의식, 정체성 등을 거론하는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부터 재일코리안 3세들의 비율이 증가하면서 주목받는 작가 등장합니다. 유미리, 현월, 이기승, 가네시로 가즈키, 사기사와 메구무 등이 그들입니다. 특히 유미리는 대표작 『가족시네마』에서 재일코리안 사회의 불안과 소외의식을 천착했고, 사기사와 메구무/가네시로 가즈키 등은 탈민족적 가치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이들은 현세대의 작가라 칭할 수 있겠습니다.

어제 강의는 식민지 시기 일본에서 활동한 조선 작가들과 재일 유학생들의 삶의 궤적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많은 자료와 정보를 제공해주는 귀한 강의였습니다. 김환기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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