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임영상 선생님께서 “1920~30년대 연해주 고려인 사회 – 언론, 교육, 극단, 문학”이란 주제로 동아시아포럼 IUC 한국학 특강을 진행해주셨습니다.

임영상 선생님께서는 고려인(조선인)들의 극동 이주가 1860년대 초반 시작됐으며, 특히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이주가 더욱 크게 늘어났다고 말씀하시며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1922년 내전 종결 이후 극동 지역이 온전한 소련의 영토로 병합된 이후 고려인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주의 건설 및 콜호즈(집단농장) 조직에 참여했습니다. 고려인들은 자체적으로 신문을 발행하고 교사를 양성하고, 연극과 공연을 개최하는 등 극동지역 인근에 거주하는 다른 소수민족들과는 차별화된 많은 업적을 만들어내면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해나갔습니다.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해 조선인들이 강제이주 당할때까지, 1920~30년대 러시아 연해주 한인사회는 중국과 미국, 일본 뿐만 아니라 모국인 식민지 조선 보다도 교육과 언론, 공연, 문학 분야에서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수준과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습니다. 한인 신문 <선봉>은 이 중  가장 큰 업적입니다. <선봉>을 토대로 조명희를 위시한 조선 출신 작가들의 고려인 문학도 큰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때 남겨진 작품 모두가 연해주에서 생성된 한민족의 문화유산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의 활동과 그로 인해 생겨난 빛나는 작품들은 이후 중앙아시아 시대로 이어지는 고려인의 삶의 방식과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요즘 부쩍 한국인들의 블라디보스토크 방문과 여행이 활발한데, 곳곳에 남겨진 한인 문화 유산과 예술의 흔적들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으로 강연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오늘 강의는 극동 지역 고려인들의 삶과 문화 전반을 일별할 수 있는 방대한 내용을 담은 강의였습니다. 러시아 전역을 비롯해 극동 지역의 인적 네트워크가 각별하신 강연자의 후일담과 자료 해제 경험에 대한 회고를 통해 현재까지 극동 한인 문화 연구의 수준과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었습니다. 정년퇴임 이후에도 열정적인 연구를 이어가시는 임영상 교수님의 IUC 방문과 특강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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