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혐오를 팝니다' : 미디어, 신체, 그리고 트럼프"후기 손희정연구원(16.12.02)
- 국제한국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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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0
지난 금요일 IUC에서는 손희정 선생님께서 <“혐오를 팝니다” : 미디어, 신체, 그리고 트럼프>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시의성 있고 환기력이 높은 주제였던만큼 정말 많은 청중들이 찾아주셨습니다. 자리가 없어서 돌아간 분들까지 생각하면 기록적인 청중들이 와주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페미니즘 학계에서 남다른 열정과 매력을 보여주고 계신 손희정 선생님의 인기를 엿볼 수 있는 강연이었는데요.
이날의 강연은 과연 환난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암담한 동아시아와 한반도 주변 열강들의 정세에 대한 브리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푸틴, 아베, 시진핑, 김정은, 박근혜를 비롯해 이제 트럼프까지. 일종의 환태평양 블록의 보수대연정-‘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완성된 듯한 모양인데요. 손희정 선생께서는 이 지도자들이 등장하기까지의 맥락을 각 나라의 역사적인 배경과 독재자의 후광 등으로 설명해주시면서, 과연 트럼트의 뒤에는 누가 혹은 무엇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트럼프 뒤에는 그 누구도 아닌 텔레비전이라는 강력한 미디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레이건과 닉슨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던 미국 공화당 대통령들이 신문과 잡지 등과 같은 구형 저널리즘과 불화하면서 텔레비전이라는 뉴미디어를 공략해 자신의 정치적 자원을 확보한 맥락을 이야기해주면서, 트럼프는 이들보다도 더욱 텔레비전을 적극 활용했다는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트럼프 당선’과 ‘트럼프 현상’은 난데 없이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지난 20년 넘도록 트럼프가 리얼리티 쇼 등과 같은 텔레비전을 통해 구축한 실제와 이미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그의 자본주의적 욕망이 완전하게 노골적인 차원에서 현현한 것이라는 겁니다.
트럼프가 지금껏 자신을 드러내는 형식과 내용은 철저하게 텔레비전을 자신의 도구로 삼는 전략과 맞닿아 있었는데요. 실패를 거듭한 그의 부동산 사업과 업종을 다각화해 진출한 스테이크, 미네랄 워터, 와인 사업 등에서의 신통치 않았던 성과들이 텔레비전 쇼를 통해 새로운 성공의 계기를 마련해 그를 자본주의적 욕망의 최정점을 누리는 인물로 만들어냈습니다. 그가 치룬 미국대선은 그런점에서 보자면 어떤 결과를 얻든 간에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였던 셈이죠. 오히려 실제 당선 이후 갑작스럽게 의기소침해진 것 같은 트럼프의 모습이 생소하게 느껴진 것은 자신도 당선하는 경우를 상정한 리얼리티 쇼의 콘티를 보지 못했던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텔레비전 쇼의 확정된 대본을 받아든 이상 트럼프의 행보는 더욱 거침없어 질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의 텔레비전 성공 신화는 철저하게 여성과 소수자 그리고 이민자 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혐오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었고, 그것을 감추거나 포장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혐오를 노골화하고 그것을 순수한 욕망으로 등치시키는 방식을 통해 소비자와 유권자에게 자신을 선전한 셈이지요. 프로파간다가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될 때는, 실제로 자신의 민낯을 그대로 노출하거나, 혹은 파멸된 세계를 날것으로 증거할 때 인것 같습니다. 박근혜 게이트가 한자릿수 이하의 저점을 맴돌던 종편의 시청률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사례도 그렇거니와 광장에서 드러난 성난 민심이 예상외의 창조경제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맥락도 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에 불어닥친 온갖 게이트와 정치적 위기 등을 텔레비전이 중계하거나 온갖 미디어가 포획하는 장면을 보면서 새롭게 부상하는 정치 세력들이 또 다른 트럼프 현상 혹은 그것의 리바이벌일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듭니다. 강력하고 파괴적인 소비문화와 혐오의 정동이 결합할 때 그 미디어의 힘은 가공할만한 것이 되기 때문이죠. 현재 광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민주시민들의 생각과 행동이 약자들에 대한 혐오에 더욱 예민하고, 사려깊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열정적으로 특강을 진행해주신 손희정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